아베 신조(安倍晋三) 수상
2014년 7월 1일 오후.
아베 수상은 임시각료회의에서 다른 나라에 대해서 일본 자위대가 반격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이른바 "집단적 자위권"에 대해서 각의결정(閣議決定-일본 행정부의 최고 결정)을 내렸다. 지금까지 평화헌법이라 불리는 헌법 9조에 따라 전수방위(専守防衛)만을 해왔던 일본이, 처음으로 "자국민의 안전을 위해서" 외국에 대해서 반격을 가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에 관련 된 설명은 신문의 링크를 걸어둔다.
연합뉴스(2014년 7월 1일자)
일본 "집단자위권 행사 가능"...전쟁 가능한 나라로
구체적으로 무엇이 바뀌는지는 아래의 사이트에 링크를 걸어둔다.
아사히신문(2014년 7월 1일자)
(집단적 자위권) 무력행사, 정권의 재량, 각의 결정으로 무엇이 변하는가.
(集団的自衛権)武力行使、政権の裁量 閣議決定、何が変わるのか
경향신문 서의동 기자 블로그 "신문기사의 민낯"(2013년 10월 3일자)
아베, 평화헌법 개정 없이 '전쟁 가능 국가' 시도할 듯
이에 대해서 배경과 목적을 나름의 논리를 써보고자 한다.
<배경>
집단적 자위권은 아베 정권이 계속해서 원했던 이른바 "보통 나라"로 가기 위해서 필요한 하나의 방법으로 인식이 된다. 06년에 시작해서 1년도 못 채운 채로 끝난 제 1차 아베 정권시절부터 아베가 주장을 해왔던 바이기도 하다.
이러한 움직임의 시작은 1991년의 걸프전쟁 때였다.
사담 후세인의 이라크가 쿠웨이트에 침공했을 때, 미국이 주도하는 UN군이 이라크에 출동하여 전쟁을 벌였고, 결과는 UN군이 승리를 했다.
그 당시 일본은 미국의 요청이 있었음에도 평화헌법에 따라 전투군, 혹은 지원군은 파병하지 않고 약 130억 달러 규모의 지원금을 내기로 결정을 했다. 그러나 전쟁이 끝난 후 피해 당사자국인 쿠웨이트는 UN군에 참가한 국가들에게 감사를 표하는데, 일본은 그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 이른바 "일본은 돈은 내지만 피를 흘리지 않는다."라는 세계적 비난을 받게 된 것이다.
이에 대해 일본 정부는 조금씩 자위대의 역할을 바꾸기 시작한다.
걸프전 직후인 1992년에는 "PKO 협력법안"이 성립이 되어, "평화적 목적을 위해서" 자위대를 해외 파병할 수 있도록 바꾸었다(초기 목적은 페르시아만의 기뢰 제거).
그리고 2001년도에 있었던 9.11 동시 테러에 의해서 시작된 이라크 전쟁, 그리고 이어진 아프가니스탄 전쟁 등과 관련하여, 일본에서도 "유사시에 자위대가 자국민을 보호하기 위해서 헌법 9조의 재논의가 필요하다"라는 논의가 활발해지게 되었고, 이 논쟁의 결과 헌법 9조(평화헌법) 속에서 자국민을 보호할 수 있도록 하는 "무력 공격 사태 대처를 위한 관련 법안(武力攻撃自体対処関連法案)"이 2003년에 가결시킨다.
이 법안은 "일본 국내"를 상정하였으나, 다시 10여년이 지난 이번 "집단적 자위권"은 국내에 한정하지 않고 "해외에 체류 중인 일본 국민 및 일본의 동맹국"까지도 방위 대상으로 설정하였으며, 지금까지 "수비"에 전념을 했지만 "반격이 가능"하다는 것까지 그 내용에 포함시키고 있다.
그렇다면 이렇게 아베 정권이 집단적 자위권을 결정할 수 있었던 더 깊은 배경은 무엇일까. 그건 우선 집단적 자위권의 결정의 목적을 보아야 할 것 같다.
<목적>
집단적 자위권의 목적을 논할 때 거론되는 것은 "Sea-lane 안정 확보 문제" "대러시아 문제" 등도 있지만, 가장 핵심으로 이야기 되는 것은 "한반도 유사시"라는 문제이다. 여기에는 한국, 북한, 중국이 그 범주에 속해 있으며, 해당 지역에서의 군사적 충돌의 발생은 물론, 해당 국가와의 무력분쟁이 일어날 경우 "일본의 안전을 위해서" 반격이 가능하도록 한 것이라고 흔히 설명하고 있다.
특히 최근 들어 독도문제/조어도문제와 관련하여 한일/중일 관계의 불안성이 가중되고, 북한의 미사일 문제는 일본 전역을 전쟁 공포로 몰아넣었다. 이러한 상황이 논의에 가속도를 붙여 각의 결정으로까지 이어졌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 표면적인 것에 불과한 것이라고 보인다. 그러한 논의 자체는 예전부터 있어 왔던 것이었기 때문에 다음 가을에 있을 임시국회 때까지 국민 여론을 충분히 성숙시키고 결정을 내릴 수도 있었다. 아베 본인의 개인적인 정치적 신념은 차치하더라도 문제는 "왜 아베는 집단적 자위권의 행사 결정을 서둘렀는가?"에 있다.
이 문제에 대한 설명은 크게 2 가지로 볼 수 있다. 첫째는 "경제문제의 회피", 두 번째는 "미국과의 관계 문제"이다.
1) 경제문제의 회피
우선 아래 그래프를 보자.
그래프 1 - 일본 소비자 물가 종합지수
(총무성 통계국 자료. 2014년 6월 27일 발표)
이 그래프는 일본의 소비자 물가 종합지수를 나타내고 있다. 이 그래프르 보면 4월 이후 급등한 것을 알 수 있다.
무엇이 가장 올랐을까. 계속해서 그래프를 살펴보자.
그래프 2 - 일본 소비자 물가 종합지수 2
(왼쪽 신선식품 제외, 오른쪽 식료품(주류 제외) 및 에너지 제외)
종합지수에서 날씨 등에 좌우되는 "신선식품"을 제외한 것이 그래프 2의 왼쪽이며, 거기에서 다시 식료품과, 전기/석유 등의 에너지를 제외한 것이 오른쪽 그래프이다. 식료품을 제외했더니 조금 낮아지기는 하나, 근래 들어 가장 높은 물가 상승률을 보이고 있으며, 4월 이후 높은 채로 유지되고 있다.
계속해서 그래프를 보자.
그래프 3 - 일본 소비자 물가 지수 3
(왼쪽 전기세, 중간 휘발유, 오른쪽 신선식품을 제외한 식료품)
2013년부터 완만하게 상승해왔던 전기세가 5월 들어서 급격하게 상승을 했다. 현재 일본에서는 원자력 발전이 이루어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이 배경에는 석유의 가격 상승이 한 몫을 차지하게 되는데, 석유도 현재 최근 4년 동안 최고 가격을 갱신했다.
그보다 일반 국민에게 더 큰 충격으로 다가오는 것은 가장 오른쪽 그래프이다. 국민들이 가장 민감하게 체감하는 식료품의 가격 상승률이 3월 이후부터 고공행진을 벌이고 있으며 그 수준에서 떨어지지 않고 완만하게 계속해서 상승을 하고 있다.
에어컨을 집중적으로 사용해서 1년 중에 전기사용량이 가장 많은 여름이 다가오기에 전기세와 석유 물가는 앞으로 더 오를 전망이며, 그러한 요금 상승요인에 따라 식료품의 가격도 내려올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이렇게 가격이 오르게 된 요소는 크게 2가지가 있다. 첫째는 소비세 인상이며, 둘째는 아베 내각이 내건 경제 정책인 "아베노믹스"이다.
소비세는 4월에 5%였던 것을 8%로 올렸다(내년에는 10%). 이 소비세 인상분을 기업들이 가격인상분으로 적용을 했기 때문에 전체적인 물가가 올랐다.
아베노믹스의 영향은 아베가 주장한 디플레이션 탈피를 위한 "재정출동정책"과 "금융완화정책"이 영향을 미치고 있다. 아베가 시중에 돈이 돌지 않기 때문에 디플레이션이 심화되고 있다고 보고, 일본은행 총재를 정치적 힘으로 바꾸면서까지 시중에 돈을 풀었다. 이에 따라 급격한 엔저현상이 일본에서 일어났으며, 그 결과로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석유와 식료품의 가격이 급격하게 상승하게 되었다.
아베노믹스의 마지막 정책이 "성장전략정책"이기에 그 정책이 주효하여 경제회복으로 임금이 상승하게 될 경우 국민들이 물가상승에 대해서 민감해지지 않을지는 모르나, 현재로서는 성장전략에 대해서 재계도 경제학자도 의구심을 던지고 있는 상황이다보니, 아베의 우려는 커지고 있다. 지난 제1차 아베정권이 무너지게 된 직접적인 계기가 "연금문제"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이었기 때문에 아베는 그러한 사태를 맞이하기 전에, 그리고 국민들과 언론의 논의의 시선을 딴 곳으로 돌리기 위해서라도 집단적 자위권의 추진을 진행해야만 했던 것으로도 볼 수 있다.
2) 미일관계
아베가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하면서"보통 국가"를 지향한 이유 중에 하나가 미일관계의 개선에 있다.
현재 일본에는 주로 사용되는 8개의 미군기지(미사와三沢, 요코타横田, 요코스카横須賀, 아츠기厚木, 이와쿠니岩国, 사세보佐世保, 가데나嘉手納, 후텐마普天間)가 있으며, 이 외에도 캠프, 공동시설 등이 있다. 가장 넓은 지역은 홋카이도에 있으나, 오키나와의 경우 그 지역의 약 75% 정도가 미군기지관련 시설이다.
주둔하고 있는 미군의 수도 세계에서 제일 많으며 미국 국방성 및 방위성의 2010년의 자료에 따르면 총 인원 53,082명으로, 독일(52,332명), 한국(26,339명-08년도 자료)보다 많다.(출처-전국기지문제 네트워크 2012년 4월 7일)
도표 1 - 재일미군의 배치도
(출처-일본 방위백서 2013)
사진 1 - 오키나와 가데나(嘉手納) 비행장
여기에 이른바 "선심예산(思いやり予算)"이라고 하는 재일미군에 대한 엄청난 규모의 예산이 집행되고 있다. 여기에는 미군기지의 토지대금, 기지 종사자에 대한 임금, 공공요금, 기지 주변 대책비와 같은 "직접지원"와 공유지에 대해서 미군이 원래 지불해야 할 토지의 임대비용, 세금, 관세 등을 포함한 "간접 비용"까지 포함하면 약 1860억엔(약 1조8천억원)에 이른다.
미군기지 문제는 최근 10여년 동안 일본 정권들이 해결하지 못한 문제였으며, 일본이 자위대로서 전수방위를 하고 있는 이상 이러한 비용은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 군사적인 자립과 미군문제 해결을 위해서 미군기지의 이전 혹은 철수 등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정치적, 이념적 대립과는 다른 양상으로 다양한 논의들이 펼쳐졌다.
2009년부터 2011년까지 정권을 잡았던 민주당 정권의 경우에도 이 재일미군, 미군기지 문제가 항상 걸림돌로 작용을 해왔다. 초기에는 미군기지 반환을 주장했음에도 불구하고, 정권을 잡은 이후에는, 수상조차도 이전과 번복을 반복하게 되면서 국민들의 신뢰를 잃게 되었다. 민주당 정권이 짧은 수명으로 끝나게 된 것에도 한 몫을 하고 있는 셈이다.
집단적 자위권은 일본 자위대를 통한 일본의 방어 및 반격까지를 목적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사실상 집단적 자위권의 성립은 재일미군의 필요성을 낮추는 효과를 가져온다. 일본이 계속해서 미국의 당국과 집단적 자위권의 성립을 위해서 조율을 해 온 배경에는 이러한 미국측의 생각도 포함되고 있다.
9.11 이후 계속해서 확대해왔던 미국에 의한 해외 파병, 해외 군사활동이 2005년 즈음부터 벽에 부딪히기 시작하면서 미국 내에서는 반대로 해외파병의 필요성에 대한 의문과 국민의 보호, 예산의 문제 등이 정치적 문제로 대두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오바마 정권은 계속해서 미군의 재조정, 재배치를 실시하였고, 해외 파병의 철수와, 해외주둔 미군의 감축 등을 추진해야만 하는 입장으로 몰리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당연히 가장 많은 미군이 주둔하고 있는 일본의 재일미군의 조정문제도 미국에 있어도 핵심 사안으로 등극했다. 그러한 미국의 상황을 이용하여 아베 정권의 염원이 성립이 될 수 있었다.
즉, 집단적 자위권의 성립을 배경으로 지금까지 혹처럼 붙어서 정국운영에 걸림돌이 되어 왔던 재일미군문제에 관련해서 어느 정도 자주적 역할을 행사할 수 있게 된 샘이다. 그러한 정국운영을 위해서라도 아베 정권은 집단적 자위권 성립을 서둘렀다고 본다.
<다시 배경으로.>
앞서 사회적, 역사적 배경을 통해서 아베 정권이 경제적 요인의 회피 목적과 미일간의 외교적인 목적을 위해서 집단적 자위권의 행사 결정을 서둘렀다고 설명을 했다. 여기서부터는 다시 그것을 결정할 수 있었던 일본의 정치적인 배경에 대해서 다시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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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길어졌는데다, 여기서부터는 집단적 자위권에 국한된 내용이 아니니까, 다음 "일본을 읽다 4 - 일본인의 정치적 경험"에서 쓰겠습니다.
언제 쓸지는 몰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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