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0월 19일
00시 33분 36초에 훕스라이프에 내가 쓴 글
http://www.hufslife.com/5076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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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의 나이로 데뷔하여 지금까지 12년차 통역사입니다.
정말 통대를 나오지 않는 사람으로서 가는 모든 코스를 겪었다고 보시면 됩니다.
밑바닥부터 최고급까지 다 겪어본 것 같아요.
국제회의에, 동시통역 부스 기기까지 다 다를 줄 알고, 심지어 부스 설치까지 직접하는(목장갑끼고 ㅋ) 그런 통역사입니다.
덕분에 이 바닥에서 볼 것 못 볼 것 다 봤습니다.
처음에 받은 통역비가 하루 4시간 일하고 8만원 받았었습니다. 그 당시의 저에겐 엄청난 수입이었죠.
당시 제 생활비가 20만원이었으니, 3일 일하면 그 생활비 이상의 돈을 벌 수 있었던 셈이었습니다.
가장 많이 뛴 업체의 일이 훕라에도 간간히 올라오는 G모 회사의 일이었는데, 8시간 일하고 7만원 받았습니다.
게다가 그 머나먼 즐텍스에다, 코트라에, 학여울까지.... 서울에서 컨벤션할 수 있다는 곳은 거의 다 돌았던 것 같습니다.
3년차 즈음에 깨달았어요. "이래선 안된다"
결국에는 제가 갖고 있는 능력을 저렴하게 판매하고 있는 덤핑 업자와 다를바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우선 더 많이 벌기 위해선 자신의 실력이 남보다 위라는 것을 증명하고, 그리고 자기 자신을 알리는 영업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능력시험 1급 만점과, JPT 만점을 따기 위해서 공부하였고,
명함을 만들어서 뿌렸으며,
무슨 학원강사들처럼 사진도 찍고 지금까지 일한 통역/번역 일을 정리하여 이력서를 일본어/한국어 양쪽으로 만들어서 돌렸습니다.
그랬더니 서서히 제 몸값이 올랐죠. 처음에는 10만원, 그 다음엔 15만원... 지금은 그보다 훨씬 많이 받게 되었습니다.
개인 영업과 인맥 관리가 빛을 발하게 되더군요.
처음에는 저가라서 하기 싫었던 컨벤션 통역도 새로운 인맥 창출이라는 점에서 메리트가 크더군요. 하루에 열심히 명함 20장씩만 돌리면 3, 4개 업체에서는 연락이 왔고, 컨벤션 통역으로 번 돈의 3배 정도의 수입을 만들어냈으니까요.
하지만 그 노력은 10년에 걸쳐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래도 먹고 살긴 힘들어요. 결국 이 업계에서 먹고 살기 편하려면 통대를 나와야 한다는, 통대의 벽도 느끼고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통역사는 메인이 되지 못한다는 것도 아셔야 합니다. 통역사가 무엇을 만드는 것이 아닌, 통역사는 그것을 도와주는 존재에 불과하다는 것도 계속하다보면 느끼게 됩니다... 그것을 받아들이느냐 아니냐는 일하는 보람에 있어서 큰 차이가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N사의 RPG게임의 M도 제가 일본 수출한 게임이고
아라시/ V6 / 캇툰 / K-1 등의 무대 뒤에서도 통역 했었고
양방언 / 유키 쿠라모토 무대도 제가 통역한 무대이고
그 외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수 많은 통역과 엄청난 금액의 수출/수입을 이룩했지만,
결국엔 만들어진 것에 제가 약간 더 도왔을 뿐이라는 생각이 들게 되더군요....
뭔가 "내 것"을 하고 싶다고 생각하면, 참....힘들더라구요.
그래도 만약 지금 여러분이 "흥미"나 "경험"을 위하여 통역을 하신다면 스스로의 통역의 질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고, 그에 합당한 금액을 받으시길 바랍니다.
첫 단추를 잘 못 끼게 되면, 그 후에 오랜 기간동안 고생을 하게 됩니다.
쓰다보니 두서 없는 글이 되었네요.
여튼 외대다 보니 통역할 기회도, 통역 경험도 많으실 것 같습니다만
통역하시는 외대인들의 건승을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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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의 나이로 데뷔하여 지금까지 12년차 통역사입니다.
정말 통대를 나오지 않는 사람으로서 가는 모든 코스를 겪었다고 보시면 됩니다.
밑바닥부터 최고급까지 다 겪어본 것 같아요.
국제회의에, 동시통역 부스 기기까지 다 다를 줄 알고, 심지어 부스 설치까지 직접하는(목장갑끼고 ㅋ) 그런 통역사입니다.
덕분에 이 바닥에서 볼 것 못 볼 것 다 봤습니다.
처음에 받은 통역비가 하루 4시간 일하고 8만원 받았었습니다. 그 당시의 저에겐 엄청난 수입이었죠.
당시 제 생활비가 20만원이었으니, 3일 일하면 그 생활비 이상의 돈을 벌 수 있었던 셈이었습니다.
가장 많이 뛴 업체의 일이 훕라에도 간간히 올라오는 G모 회사의 일이었는데, 8시간 일하고 7만원 받았습니다.
게다가 그 머나먼 즐텍스에다, 코트라에, 학여울까지.... 서울에서 컨벤션할 수 있다는 곳은 거의 다 돌았던 것 같습니다.
3년차 즈음에 깨달았어요. "이래선 안된다"
결국에는 제가 갖고 있는 능력을 저렴하게 판매하고 있는 덤핑 업자와 다를바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우선 더 많이 벌기 위해선 자신의 실력이 남보다 위라는 것을 증명하고, 그리고 자기 자신을 알리는 영업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능력시험 1급 만점과, JPT 만점을 따기 위해서 공부하였고,
명함을 만들어서 뿌렸으며,
무슨 학원강사들처럼 사진도 찍고 지금까지 일한 통역/번역 일을 정리하여 이력서를 일본어/한국어 양쪽으로 만들어서 돌렸습니다.
그랬더니 서서히 제 몸값이 올랐죠. 처음에는 10만원, 그 다음엔 15만원... 지금은 그보다 훨씬 많이 받게 되었습니다.
개인 영업과 인맥 관리가 빛을 발하게 되더군요.
처음에는 저가라서 하기 싫었던 컨벤션 통역도 새로운 인맥 창출이라는 점에서 메리트가 크더군요. 하루에 열심히 명함 20장씩만 돌리면 3, 4개 업체에서는 연락이 왔고, 컨벤션 통역으로 번 돈의 3배 정도의 수입을 만들어냈으니까요.
하지만 그 노력은 10년에 걸쳐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래도 먹고 살긴 힘들어요. 결국 이 업계에서 먹고 살기 편하려면 통대를 나와야 한다는, 통대의 벽도 느끼고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통역사는 메인이 되지 못한다는 것도 아셔야 합니다. 통역사가 무엇을 만드는 것이 아닌, 통역사는 그것을 도와주는 존재에 불과하다는 것도 계속하다보면 느끼게 됩니다... 그것을 받아들이느냐 아니냐는 일하는 보람에 있어서 큰 차이가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N사의 RPG게임의 M도 제가 일본 수출한 게임이고
아라시/ V6 / 캇툰 / K-1 등의 무대 뒤에서도 통역 했었고
양방언 / 유키 쿠라모토 무대도 제가 통역한 무대이고
그 외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수 많은 통역과 엄청난 금액의 수출/수입을 이룩했지만,
결국엔 만들어진 것에 제가 약간 더 도왔을 뿐이라는 생각이 들게 되더군요....
뭔가 "내 것"을 하고 싶다고 생각하면, 참....힘들더라구요.
그래도 만약 지금 여러분이 "흥미"나 "경험"을 위하여 통역을 하신다면 스스로의 통역의 질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고, 그에 합당한 금액을 받으시길 바랍니다.
첫 단추를 잘 못 끼게 되면, 그 후에 오랜 기간동안 고생을 하게 됩니다.
쓰다보니 두서 없는 글이 되었네요.
여튼 외대다 보니 통역할 기회도, 통역 경험도 많으실 것 같습니다만
통역하시는 외대인들의 건승을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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